※ 영화 ‘파베르망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사랑을 교통 사고에 비유. 아무리 전방 주시하며 경계하더라도 누가 와서 부딪쳐서는 불가피하다. 내 운전 실력과 신중한 태도, 계획된 경로까지 모두 무력화시키는 순간의 충돌. 이때 사랑은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된다. 어린 사미(맛테오·죠리앙)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미스터 엔지니어”로 불리는 아버지의 버트(폴·다.)과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미치(미셸·윌리엄스)의 손을 잡고 생애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 날이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새미는 공포를 토로한다. ” 어두컴컴하네요.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것만이 스크린에는 거인처럼 큰 사람들이 쉴 틈도 없이 등장한다고 들기도 했다. 미친 웃음을 띤 얼굴로 “영화는 잊을 수 없는 꿈”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하고 아들의 손을 부드럽게 이끈다. 그날 밤, 사미는 “지상 최대의 쇼”(세실·B·데미루, 1952)을 관람한다. 스크린 중앙 너머에서 기차가 달린다. 자동차 1대가 선로에서 견디며 기차를 멈추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마침내 천둥 같은 충돌이 일어나고 운전수는 멀리 돌아간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미는 어이 없는 표정이다. 한쪽 눈은 죽음의 공포로 흔들리고, 또 한편 눈은 영화에 매혹되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이 교통 사고 같다는 비유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위험하다. 자칫 목숨을 빼앗지도 편안하게 저장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우려가 있는 것이 사랑이다.
『 빠베루 먼스 』의 원제는 “The Fabelmans”(더·후에이불 만즈)에서 Fabelman은 사미와 그 가족의 성을 말한다. 우화 또는 이야기를 의미한다”후에이불”에 “~을 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단어”맨”을 조합했다. 스티븐·스필버그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빠베루 먼스”은 일종의 자전 영화이다. 감독은 “실제 삶에 위치한 주요 부분을 영화로 갖고 왔으며 특히 부모에 대한 기억을 잘 활용한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스티븐이 아니라 샘(사미, 샘)이 등장한다. 감독은 스필버그라는 빛나는 성을 묵음 처리한 채”후에이불만 가족”의 일대기를 쓰기로 한다. 영화는 미치로 버트, 그리고 새미가 경험하는 실패를 통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 공포와 매혹에 휩싸여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후에이불만 “들은 언젠가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결국 쓰는 사람을 떠나서 읽는 사람에 속한다. 아름다운 열정적 사랑은 그 사랑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미는 심한 통증을 감수하면서 배운다. 영화는 내가 출발하지만 저는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 만드는 이의의 주장과 의도를 배반하고 완성하는 것이 영화이다. 스필버그가 이들 영화의 운명에 몰랐을 리 없다. “빠베루 먼스”의 제목을 “스필버그(“으로 바꿨다고 해도 영화는 드디어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감독은 오히려”후에이불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들 가족이 쓴 우화를 전개하려고 한다.” 잊지 못할 꿈”을 본뒤 소년은 영화에 빠져든다.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교통 사고”는 무서운 황홀하고, 새미는 그것을 뿌리치고 싶다고 동시에 또 보고 싶다. 그는 한밤중에 장난감 열차를 선로에서 움직이는 반대쪽에서 달려온 장난감 차와 충돌한다. 그의 속내를 눈치 챈 미친 사미에 버트의 카메라를 건넨다. 사미가 처음 찍었던 “기차 영화”는 광대한 화면 대신 그의 작은 두 손바닥에 영사된다. 영화는 그에게 더는 무서운 대상이 아니다. 직접 만들고 노는 손에 쥐고 기뻐하며 자랑이다. 그는 두 여동생을 배우로서 미이라 영화를 찍고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상당히 열대 같은 나이에 들어서자, 새미(가브리엘·라벨)는 “리버티 발란스를 쏜 남자”(존·포드, 1962)을 모방한다. 필름 값을 준비하는 모래 폭풍은 애리조나 산 속으로 들어가고 전갈을 붙잡아 가족 전원과 친구들을 동원하고 총격전을 연출한다. 케첩을 가짜 피로 쓰던 시절은 벌써 끝나고 있다. 이제 배우들은 가슴에 쥔 작은 풍선을 나누고 피를 흘리고 매미는 필름에 구멍을 뚫고 총구 섬광을 실감할 수 있도록 구현한다. 이미 그는 전갈이 맹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영화에 매료됐지만 버트는 “실제로 쓸모 있는 것”에 집중한다고 가르친다.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줄기에<빠베루 먼스>는 예술가의 탄생으로 뻗어 간다. 여기서 뿌리내릴 것은 스필버그가 “우리 집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전장”이라고 자평하는 한 가족의 역사이다. 사미에게 영화는 반복하는 다른 의미를 띠다. 뭔가를 흉내내는 놀이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주는 취미, 그렇게 유희의 영역에 머물던 영화는 어느 날, 사미를 다시 공포에 몰아넣다. 버트의 이직으로 이사를 결정한 뒤 새미 가족은 캠핑 간다. 버트의 조수이며, 가족 전원과 각별히 지내페니(세스, 로건)도 마찬가지다. 버트가 모범적인 가장이라면 베니는 매력적인 연예인이다. 아이들을 모으고 온화하고 신중한 태도로 사물의 원리를 설명하던 버트는 당장 혼자 남는다. 밋치를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흔들어 베니 옆에 아이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교훈을 전해버트와 농담을 하다 베니 사이에서 위험한 균형을 잡았다. 이후, 미치가 어머니의 죽음을 체험하고 크게 상심하자 버트는 새미에 “캠핑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방에 틀어박혀서 필름을 만지다가 사미는 눈치채고 만다. 어머니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눈치채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했을 뿐, 미치로 베니는 서로를 원하고 있다. 사미는 경악한다. 영화가 진실을 파악하다는 것, 그 진실은 때로는 몸이 떨릴 만큼 파괴적이라는 것. 어쩌면 사미는 그 순간, 영화가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직접 확인했는지도 모른다.죄책감에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팔아 버린 사미가 다시 감독으로 나서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의 분리와 유대인 혐오 등 새미의 십대 후반에는 그늘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동하는 기운이 끊임없이 싹튼다. 무성 영화계에서 일했다는 삼촌 보리스(주드, 허쉬)가 갑자기 나타나는 욕망과 불화하는 예술가의 고통을 펴는가 하면 예수님에 빌면 사미를 무릎 꿇린 모니카(구 로이·이스트)는 키스 세례를 퍼붓다. 그들이 초래한 자극의 덕분인지 사미는 교내”소풍 영화”를 찍는 것에 동의한다. 배우들을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는 평소대로 공정을 밟는다. 잘 찍고 잘 연결하면 된다. 영화는 여전히”신의 놀이”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이는 것도 도지를 영웅으로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미는 다시 예술가이자 사기꾼이 되고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내는 영화의 힘에 제대로 마주. <빠베루 먼스>을 스필버그의 실화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그가 어떤 유산을 이어 받았는지 추측할 수는 있다. 영화는 버트의 책임감과 미치의 예민하면서도 대담한 성격, 베니의 유머까지 모두 감싼다. 포용력을 발휘하고 유려한 솜씨로 찍어 간 끝에 영화는 “사상 최고의 감독”존·포드(모 유명 감독이 카메오 출연하는)향후 사미를 데리고 간다. 당황한 만남을 마친 뒤 사미는 원기 왕성 걷다. 그때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화면 중앙에 위치한 지평선이 아래로 쑥 내려간다. 사미가 말하는 것만 같다. “이봐요, 저는 작고 하늘은 이렇게 넓다.”드디어 내 발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영화 자체처럼 보인다면 과장일까. 그러나<조스>(1975)에서 블록 버스터의 시대를 연 지 반세기 동안 할리우드를 지키던 스티븐·스필버그가 증명한다. 사미와 같이 영화도 또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파베르망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가브리엘 라벨 공개 2023.03.22.파베르망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가브리엘 라벨 공개 2023.03.22.리버스 reversemedia.co.kr 굴차한비